logo
|
Blog
  • 회사 소개
  • Alarmy
  • DARO
  • Delighthub
딜라이트룸 채용
조직문화

“CEO”에서 “스타트업 PM”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가장 작은 팀에서 다시 배우는 스타트업 적응기
DelightRoom's avatar
DelightRoom
Mar 04, 2026
“CEO”에서 “스타트업 PM”으로
Contents
커리어 정점을 찍다다 가졌는데 하나도 가진게 없다모든 걸 내려놓다작은팀, 빠른속도, 높은밀도내려와 보니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들

가장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 가장 작은 팀에서 다시 배우는 스타트업 적응기

커리어 정점을 찍다

돌이켜보면 꽤 화려한 시절이었다.

직장인으로서 오를 수 있는 끝까지 올라봤으니 말이다. 우연한 기회로 초기 스타트업에 합류하게 되어 사업과 제품을 동시에 만들어가던 시기, 매일이 문제 해결의 연속이었고 회사는 눈에 띄게 성장했다. 성장 과정에서 정해진 역할보다 “지금 당장 필요한 일”이 우선이었다. 그 덕분에 회사의 거의 모든 영역에 자연스럽게 관여하게 됐다.

결국 대기업에 편입됐고, 회사가 커지면서 조직은 정비되었다. 외부에서는 우리를 ‘성공한 스타트업’이라 불렀다. 그 과정에서 나는 C-Level, 소위 말하는 임원이 됐고 집무실도 생겼다. 개인 명패가 붙은 공간에서 하루를 시작한다는 사실이, 그 공간의 크기가 내 위치를 직관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었다. 결국, 신사업 법인을 맡게 되며 대표라는 타이틀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위로 올라가는 흐름이 단 한번도 멈춘적 없었고, 멈출 이유도 없어 보였다. 정말이지 단 한순간도 자신 없었던 적이 없었다. 겁없고 겸손을 몰랐던 그 때, 이렇게 눈 떠보니 대표가 되어 있었다.

다 가졌는데 하나도 가진게 없다

가질 수 있는 것은 다 가졌다.

본사업 법인의 부사장, 신사업 법인의 대표를 겸하며 두 회사를 오갔다. 그 과정에서 국내 통신 최초의 ‘비대면 본인인증 통신 가입’ 인프라를 구축했고, 범용 공인인증서 폐지 흐름과 사설 인증 시장 형성에 기여했다. 더 큰 의사결정을 하고 더 많은 자원을 움직일 수 있는 자리였다. 주변의 부러워하는 시선조차도 자연스러워졌다. 멀게만 느껴졌던 대기업 사장단과 임원진과 같은 테이블에 앉는 일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게 됐다.

겉으로 보기엔 부족한 것이 없어 보였다. 적어도 그때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하루를 채우는 일의 성격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기보다는,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었고, 가치 있는 제품을 고민하기보다 그 가능성을 정당화하는 자료를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가능성보다 명분이 앞섰고, 실행보다 설명이 필요했다. 모든 선택은 주주 관점에서 납득 가능해야 했고, 빠른 실험 대신 합의와 검증이 속도를 대신했다. 이 방식이 잘못된 건 아니었지만, 내가 가장 잘하던 방식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보고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제품을 만들며 느끼던 감각은 희미해졌고, 내가 잘하는 일과 실제로 하고 있는 일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빠르게 벌어지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이게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 맞을까?”

모든 걸 내려놓다

결국, 그만두는 쪽을 선택했다.

의사결정은 점점 느려졌고, 신사업의 추진 속도도 자연스럽게 더뎌졌다. 캘린더는 빼곡했지만, 실행은 비어 있었다. 여러 가능성을 검토하는 과정이 길어질수록, 시장과의 간극은 눈에 띄게 벌어지고 있었다. 더 이상 상황을 통제할 수 없는 자리에서,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스스로에게 더 이상 답을 줄 수 없었다.

오랜 고민 없이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은 단호했다. 이미 답은 어느 순간부터 정해져 있었고, 이제 그 답을 실행에 옮겼을 뿐이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보기로 했다. 관리하고 설명하는 역할이 아니라, 직접 문제를 정의하고 제품을 만드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보고 싶었다. 규모나 직함보다, 일의 밀도와 방향을 선택하고 싶었다.

그렇게 모든 걸 내려놓고 ‘딜라이트룸’으로 합류했다.

작은팀, 빠른속도, 높은밀도

딜라이트룸은 작다.

조직은 작지만 체계적이고, 각자의 역할과 책임은 명확하다. 모두 순한 얼굴로 일하지만,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꽤 날카롭다. 기본을 지키는 데 집요하고, 그 기본을 높은 기준으로 유지하려는 긴장감이 전체에 흐른다.

허투루 쓰는 시간이 없다. 회의 하나, 결정 하나가 곧바로 실행으로 이어진다. 빠르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기민하고, 유휴 인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각자가 맡은 일의 무게를 정확히 알고 있고, 그 무게를 피하지 않는다. 이런 방식은 모든 스타트업이 지향하는 일하는 방식의 표본에 가깝다. ‘자율’이라는 말 뒤에 숨지 않고, ‘열정’이라는 단어로 스스로를 위로하지 않는다. 대신, 결과로 말한다. 그래서 이 팀은 조금 특별하다.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안에서는 쉼 없이 달린다.

그리고 그 조직 안에 들어온 뒤에야 느끼게 된다. 이 환경이 만들어내는 압박을. 내 존재감에 대한 압박, 성과에 대한 압박,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료들에 대한 압박.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워낙 단단하다 보니, 스스로를 느슨하게 둘 수가 없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누군가의 속도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최대의 밀도로 일할 뿐이다.

그 한가운데에서 나는 다시, 가장 치열하게 일하고 있다.

내려와 보니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들

PO에서 PM으로, 또 한 계단 내려오다.

PO로 합류한 뒤, 구독 모델과 광고 수익화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었다. 숫자로 증명해야 하는 자리였고 결과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다시 빠르게 자리 잡은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어딘가 부족한 감각이 남아 있었다. 여러 조직을 거치며 쌓아온 역량을 충분히 펼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적응의 시간 문제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결국 PM으로 역할을 다시 조정했다. 한 단계 내려오는 선택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그때서야 보이기 시작한 것들이 있었다.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런 조직에서 제대로 발휘할 역량이 아직 부족했던 것에 가까웠다. 큰 방향 설정에는 익숙했지만, 기본기를 집요하게 다지고 과정을 설계하며 팀의 속도를 맞추는 일에는 놓치고 있는 부분이 많았다. 결과에 집중해온 만큼, 그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의 밀도를 충분히 들여다보지 못한 순간들도 있었다.

가장 위에서 가장 밑으로 내려온 셈이지만, 오히려 시야는 더 넓어졌고, 손의 감각은 또렷해졌다. 의사결정을 설명하던 자리에서 다시 문제 앞에 서자,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디테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개인의 역량이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느낀다. 직함은 가벼워졌지만, 일의 밀도는 더 높아졌다.

올라가는 것만이 성장이라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내려와 보니 알게 됐다. 성장은 높이가 아니라, 깊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지금, 가장 낮은 곳에서 그 깊이를 배우고 있다.

⏰ 딜라이트룸에서 알라미와 함께 아침을 바꿀 분들을 모십니다 🙌

→ 딜라이트룸 채용 공고 살펴보기 ⏰

Share article
Contents
커리어 정점을 찍다다 가졌는데 하나도 가진게 없다모든 걸 내려놓다작은팀, 빠른속도, 높은밀도내려와 보니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들

Delightroom

RSS·Powered by Inblog